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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씨리얼 2020. 7. 6. 21:33
이런 말이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말.
대충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맥락에서 나올 말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늘 각성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기분에 의해 내 기분까지 좌지우지 되는 상황까지는 면하지 못하는게 나의 한계이다. 주로 나의 기분은 친구나 가족에 의해 휘둘린다기 보다는 직장 상사에 의해 휘둘린다. 정말 싫지만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건 도저히 부정할 도리가 없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어제 출장을 다녀와 유난히도 피곤한 탓에, 게다가 평소와 다름없이 쏟아지는 전화 속에서 업무양이 홍수를 이룬 상사는 아주 예민했다. 평소엔 온화한듯 했던 그 모습이 오히려 가짜같아 보일만큼 모진 말을 쏟아내고 짜증을 부려댔다. 같은 사무실에 앉아 숨을 쉬는게 불편할 정도로 사무실 공기를 저 지옥 아래까지 끌어내려버렸다. 그 속에서 결국 나는 그의 짜증과 스트레스 앞에 무너졌다. 분명 아침 출근 길에 마주했던 봄날씨에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는데, 오전 반나절 만에 나는 두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만큼 지쳤다. 그의 스트레스가 사무실 식구들 모두를 괴롭혔고, 상사의 기분에 취약한 나는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며 기분을 전환해도, 우체국을 다녀오며 봄바람을 느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크고 시끄럽게,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는 상사였지만, 오늘은 그 목소리가 온종일 내 귓가를 파고 들었다. 참을 수 없을만큼 내 신경을 파고 들었다. 나는 도저히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었지만, 나는 끝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속도는 더디고, 시간은 촉박한데, 저 전화는 끊어질 생각이 없으니 정말 고역이었다. 옆자리의 친한 회사 동생이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일만큼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용케 하루를 잘 버텼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자료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냥 머릿 속으로 우겨넣었다.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업무를 내팽겨치기엔 너무 많은 책임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잘 버텨낸 하루를 마무리하던 차에,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업무가 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지라,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러나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가 두드러지지 않아 늘 속상한 일이기도 하다. 잘 될때는 회사의 매출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 상사의 무한한 칭찬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한다는건 책임감과 부담감을 함께 키워가는 일이라는 걸 배우고 있다. 어쨌든, 힘겨웠던 하루를 끝내던 찰나에 그 일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나마 보람이라도 챙긴 하루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단 5분도 넘기지 못하였다.
오늘 하루 종일 짜증과 스트레스를 풀어댔던 상사는, 그 결과를 보고도 '이런 특이한 건에 대해서는 사전에 나한테 공유를 해줘야지!' 라며 나를 탓했다. 나는 하루에 3,4시간씩 이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 키워드를 검색하여 100건이 넘는 내용을 확인하고, 우리 회사에 적합한 것들을 골라낸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결과물인데, 사전에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마지막 나의 보람을 잃었다.
너털거리며 퇴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하루 참 나답지 못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
다른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받아 나 자신을 잃었고, 되찾을라치면 금세 또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야 말았던 하루.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상사의 기분에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흔들렸을까. 스트레스 많이 받는 상사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히스테리를 부리더라도, 그게 내 기분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리고 또 든 생각. 나는 저런 태도로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지.
기분이 태도가 되는 순간, 그리고 타인의 기분을 내 기분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나는 나를 잃게 된다.
그러지 말자. 오늘의 교훈을 깊이 새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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